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으로 시장에 내어놓았을 때 이것이 단지 몇 년 안에 세상을 이렇게까지 뒤바꾸어 버릴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과 인간관계 방식조차도 바꾸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늘상 경험하는 점진적 변화(incremental change)와는 달리, 이러한 변화는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비웃거나 심지어 거부하기도 하지만 일단 시작되면 우리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 변화의 정도가 가속적(exponential)일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변화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irrevocable) 특성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변화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구별 짓는 이정표가 되면서 시대의 불연속적(discontinuous) 특성을 만듭니다. 로버트 퀸(Robert Quinn)은 이러한 변화를 가리켜 근원적 변화(deep change)라고 정의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에 반대하거나 심지어 대항하여 싸우거나, 아니면 이를 그저 방관하거나 인정할 수도, 더 나아가 찬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지만, 단 한 가지 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버리기 때문이죠.

1517년 유럽에서는 뿌리까지 부패한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여 수많은 사람이 이단으로 낙인찍히고 심지어 잔인하게 처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들불같이 퍼져간 근원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입니다. 이후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지요.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전 세계 최저 출생률로 인한 인구 감소와 이어지는 인구 절벽 문제도 근원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명운이 달린 일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장차 통일 한국의 모습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정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근원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그 시대적 상황을 올바로 평가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앞서서 선택하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때에는 언제나 상황은 점점 더 불확실(uncertain)해지는데 바로 눈앞에 터진 위기 속으로 우리를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이 노출(vulnerable)된 상태에서 그대로 밀어 넣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위급(urgent)해집니다. 마냥 머뭇거리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이에 상응하게 우리 스스로 삶의 방식을 완전히 재설정하고 이른바 환골탈태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어지는 결과는 점진적 죽음(slow death)뿐이기 때문입니다. 양자택일이라는 말입니다.

매우 드물게 벌어지지만, 역사적으로 전 세계가 함께 거대 격랑 속에 빠지면서 국제 질서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록된 역사 가운데 단지 26번밖에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 이러한 사건은 그때마다 세계적 대격변이었고, 지금 세계는 27번째 대격변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땅 위의 하나님 나라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교회인 우리에게 필요한 근원적 변화가 무엇인지 역사적, 영적 고찰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그게 바로 다 이것 때문이야 하고 근본 원인을 꼭 집지는 못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걸쳐 뭔가 크게 잘못 돼가고 있다는 것은 다들 느끼고 계실 겁니다. 한국 사회나 특히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제 사회와 강대국들을 살펴보면 더욱더 그러합니다. 역설적인 사실은 오늘날의 세상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개발되었고 나날이 발전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의 뿌리가 깊을수록 그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기는 쉽지 않아지는데요. 도대체 이 시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역대상 12:32 )


위 역대상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소수의 잇사갈 지파 지도자들이 당시 그들의 시대를 분별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행해야 할 바를 알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마태복음 16장과 누가복음 12장에서도 예수님은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라고 하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분별해야 할 것을 매우 강력히 도전하셨습니다.

개개인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도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만, 조직이나 국가의 정책, 특히 국가의 대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시대 전체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성장과 번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이에 관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가 갖는 책임은 누구의 것보다 막중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교회가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면 먼저 역사적 상황에 맞게 스스로 올바로 설 수 없고, 나라들을 위해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게 되며, 세상이 필요로 하는 영적 지도력을 제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산 위에 있는 도시가 빛을 발하면 (마태복음 5:14) 그 파급력은 심지어 세계 곳곳에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편에서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지금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면 반드시 역사적 큰 그림을 그려서 전체를 봐야지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현재 패권국(초강대국, super power)인 미국을 중심으로 이것을 먼저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도서 1:9-11)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반복되는 순환주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지구의 자전 주기 하루, 달의 공전 주기 한 달, 지구의 공전 주기 1년, 태양의 자기장 주기 11년, 태양의 수스 주기 210년 등이 있지요. 드물긴 하지만 때로는 2개 이상의 이러한 주기들이 특정 위치에서 중첩될 때가 있는데요. 이때는 반드시 어떤 주목할 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지구와 달이 각각 공전하다가 태양, 지구, 달이 모두 일직선 위에 놓일 때면 지구에서 월식이나 일식이 일어나고 평소보다 큰 조수간만의 차이 등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역사에도 이런 순환주기들이 있습니다. 정확히 똑같은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원형 혹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먼저 이런 순환주기들보다 인간의 수명이 그다지 길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2 세대(약 40-50년)만 지나면 대중은 그 이전의 시대를 딱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개인은 역사를 기억할 수 있지만, 대중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위 전도서 말씀처럼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이를 미국의 역사학자 윌 듀랜트(Will Durant)는 The Story of Civilization에서 “역사는 대략적인 큰 틀에서 반복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인류는 지속해서 우상향 발전하고 있으며 세상은 언제나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진보주의적(progressive) 사고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지요.

문제는 인류의 과학 기술은 역사적으로, 특히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도덕성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 된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고, 따라서 인류의 도덕성은 세월이 흘러도 근본적으로 나아지고 있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세월은 흘러도 인류는 큰 틀에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그래서 역사는 다시 되풀이됩니다. 그뿐 아니라,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류는 발전한 기술을 가지고 이제는 오히려 훨씬 더 큰 악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반대로 같은 도구로 선을 행할 수도 있고요. 의학의 발전으로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게 있게 된 반면,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게 되었지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이를 가리켜 “삐뚤어진 목재라는 인간성에서 곧은 물건이 만들어질 수 없다”라고 말했고, 심지어 윌 듀랜트(Will Durant)는 “장구했던 과거는 미래에 운명적으로 더 큰 무대에서 더 큰 규모의 실수들을 저지르기 위해 반복해서 한 예행연습에 불과했다”라고까지 표현했더군요.

사회학적 주기

그럼, 반복되는 역사를 만드는 여러 순환주기 중 대표적인 주기 몇 가지만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회학적 주기(sociological cycle)입니다. 윌리엄 스트러스(William Strauss)와 닐 하우(Neil Howe)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는 ‘고조(high)’, ‘각성(awakening)’, ‘해체(unraveling)’, ‘위기(crisis)’라는 4단계를 80-100년 주기로 반복합니다. 이 사회학적 주기에 따르면 미국 사회는 이미 10년 전 즈음 ‘위기’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10년 정도는 이 ‘위기’ 단계를 지날 예정입니다. 이 말은 지금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각종 문제와 혼란이 조만간 해결되기는커녕 적어도 2030년 무렵까지는 오히려 악화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4번째 단계인 사회적 ‘위기’ 단계를 잘 극복하면 다시 첫 번째 단계인 사회적 ‘고조’ 단계로 접어들면서 그 사회는 다시 새롭게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서구 사회 전체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미국이라는 거대 무게중심을 따라 미국의 사회학적 주기에 동기화되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국도 광복과 한국 전쟁을 겪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사회학적 주기에 편입되어 움직여 온 것으로 판단됩니다. (참고로, 이런 이유에서 미국이나 서구에서 연구한 사회학적 연구와 세대에 관한 관측과 분석이 한국에서도 상당히 들어맞습니다.) 그렇다면, 서구 사회 전반에 걸쳐,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한동안 각종 사회적 혼란이 오히려 심화할 것을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문명의 주기

그리고, 사회적 주기보다 더 훨씬 큰 틀에서 돌아가는 문명의 주기(civilizational cycle)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가 “문명은 일관적이며 반복되는 패턴을 따라 탄생해서 성장하고 쇠퇴하여 해체된다”라고 말했듯이 문명 또한 특정 순환주기를 갖는데요. 구체적으로 ‘출현(outburst)’, ‘정복(conquest)’, ‘통상(commerce)’, ‘풍요(affluence)’, ‘지성(intellect)’, ‘쇠퇴(decadence)’의 6단계를 거쳐서 결국 마지막 7단계에서 ‘붕괴(collapse)’하기까지 대략 200-250년의 주기를 갖습니다. 미국은 문명으로서 1776년에 공식 ‘출현’하여, 1918-1945년 1,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정복’ 단계를 지나며 국제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었고, 1945년부터 활발한 국제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며 ‘통상’ 단계가 시작되었고, 1950년경 그 결과를 누리는 ‘풍요’ 단계에 진입하고, 1965년에는 ‘지성’ 단계에 진입하며 각종 (선하고 악한) 새로운 발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1985년에 퇴폐적 도덕성이 대중 매체를 통해 사회에 침투하면서 ‘쇠퇴’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평가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 전문가에 의해 이미 ‘쇠퇴기’중에서도 ‘붕괴’ 직전 최종 단계인 ‘쇠퇴 말기(late decadence)’에 들어섰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이제 ‘출현’한지 244년이 되어 이전에 존재했었던 문명들의 평균 수명을 이미 넘어선 상태입니다.

중첩에 중첩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의 문명의 주기 안에서 사회학적 주기가 몇 차례 반복되는데, 역사적으로 문명의 ‘쇠퇴’ 단계에 접어든 나라가 이를 극복하고 다시 회복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으며, 특별히 ‘쇠퇴’ 단계 중에 사회학적 ‘위기’ 단계에 중첩해서 진입하였다면 그 문명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예외 없이 결국에는 ‘붕괴’하였음을 지난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직관적으로 확증하듯이,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역사는 도덕적 타락에 종속된 나라가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쇠퇴의 길로 들어서지 않은 선례를 한 건도 기록하고 있지 못하다. 영적 각성으로 도덕적 과오를 극복했던지, 누진적 타락의 일로에서 궁극적으로 국가적 재난에 이르렀다”고 말했더군요. (나라의 도덕적 타락과 쇠퇴와 몰락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하편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명의 ‘쇠퇴기’ 중에 사회적 ‘위기’ 단계에 진입한 상태에서는 그 사회에 영적 ‘각성’이 일어난 선례 또한 한 건도 기록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순환주기적 관점으로 볼 때 현시대는 미국이나 서구 사회에서 영적 ‘각성’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가 전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면, 근대 영적 대각성 운동은 예외 없이 사회학적 주기 중 ‘각성’ 단계에서만 일어났으며, 근대 교회 부흥 운동은 약 100년마다 일어났다고 흔히들 말하는 과학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역사적으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 혹은 세계 패권을 장악했던 제국이 몰락할 때면 반드시 새로운 강대국들의 부상과 함께 국제 질서의 격변이 일어나고, 이는 주변의 모든 나라에, 특별히 21세기 상황에서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다니엘 2:21)


느브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거대 신상과 그 의미를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깨달아 알게 하셨을 때 다니엘은 위와 같이 고백하였는데요. 그 꿈은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바벨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제국, 그리고 로마 제국이라는 4개의 거대 제국이 흥망성쇠 할 것이며, 이어서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엄청난 예언이었습니다.

지정학적 주기

이는 한편으로 강대국의 흥망 성쇠에 따라 변하는 국제 질서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또 하나의 거대 순환 주기인 ‘지정학적 주기(geopolitical cycle)’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주기는 전 세계에 몇 개의 강대국이 동시대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다극세계(multipolar world)’, ‘양극세계(bipolar world)’, ‘단극세계(unipolar world)’의 3단계를 갖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극세계’를 지배하던 초강대국이 몰락할 때 국제 질서는 결코 차분히 ‘다극세계’로 재편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극세계’로의 재편은 역사적으로 반드시 전 세계적인 엄청난 혼란과 갈등, 이어지는 대규모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상황에서 이는 곧 잠재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동반한 3차 세계 대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런 세계적인 혼란과 전쟁은 수 세기에 걸쳐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현 국제 상황에서 미국이 사회학적 주기와 문명의 주기에 따라 만약에 이대로 몰락한다면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듯이 ‘다극세계’로의 진입은 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며 인류는 잠재적으로 수 세기에 걸쳐 매우 참혹한 상황에 머물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외에도, 미국의 지정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은 그의 최근 저서 Storm Before the Calm (번역서: 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에서 2020년대 중후반 중에 80년 주기의 ‘제도적 주기(institutional cycle)’와 50년 주기의 ‘사회경제적 주기(socioeconomic cycle)’ 또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동시에 위기 단계에서 중첩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사회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혼란과 갈등과 붕괴의 위험의 종류와 정도가 모두 가중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도(기구)라고 할 수 있는 UN이 탄생한 지 올해로 76년이 되었다는 것도 이와 관련해 당연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감당할 없는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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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그래프는 지난 2000년 동안 시대별 세계 인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비율과 그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 위에 ‘단극시대’와 ‘다극시대’를 각각 초록색과 보라색으로 표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단적이지만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지난 2000년 동안 이 땅 위의 하나님 나라는 항상 ‘단극시대’에 대규모로 성장해왔으며 ‘다극시대’에는 후퇴했다는 사실입니다. 패권국을 통해 국제 질서가 안정되고 모든 나라들이 함께 번영할 때 많은 선교사들이 여러 나라로 복음을 전하러 나갈 수 있었으며 교회들도 그 선교사들을 지원할 수 있는 가용 자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대들을 가리켜 팍스 로마나(Pax Romana),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고 합니다.

반면에, 국제 질서가 혼란해지고 주요 국가들이 심각한 갈등 관계에 빠지게 되면, 다시 말해서 ‘다극세계’ 시대에는 무역과 여행이 제한될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에 더해 세계 각지에 교회를 향한 핍박은 거세져서 대부분의 곳에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조건을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 유럽에서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수 세기 동안 암흑시대가 중세 유럽을 지배했듯이, 몽골 제국의 몰락과 함께 아시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교회에 대한 대규모 핍박이 일어났던 것과 같이, 대영 제국의 몰락과 함께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 세계 교회가 퇴보했듯이, 최악의 경우 미국이 이대로 몰락한다면 전 세계가 수 세기 동안 이보다 더 길고, 더 처참한 암흑시대에 빠지게 되고 이 땅 위의 하나님 나라는 크게 후퇴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를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엄청난 손실이라는 우리 세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지금은 초강대국 미국이 이 모든 것의 진앙이자 최전방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서지 못하리라

그런데, 이즈음 되면 아마 누군가 이런 반문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쇠퇴했고 사회적 위기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껏 수많은 도전과 문제들을 나름 극복해오면서 지금도 멀쩡하게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상황이 나빠도 다시 위기를 극복하고 계속 패권국의 지위는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죠. 충분히 반문해볼 만합니다.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마가복음 3:24-25)


그렇게 지속하지 못하리라 전망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급속도로 진행 중인 도덕적 쇠퇴에 기인한 사회 전반에 걸친 극단적 양극화입니다. 대표적으로 부의 양극화와 가치관의 양극화이며, 이 양극화의 속도는 최근 들어 더 급가속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사회적, 정치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이는 이미 현재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교육 정책, 부동산 및 경제 정책, 코로나 대응, 이민 정책, 복지 정책, 나아가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 등등. 제가 예를 들어 드리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이미 구체적인 사례들 몇 가지 떠올리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사회는 이미 ‘지성’과 ‘쇠퇴’ 단계를 지나면서 상당 기간에 걸쳐 크고 작은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비가역적 임계점)를 여러 번 넘어섰으며, 도덕성은 가속적으로 쇠퇴하였고, 결과적으로 성경을 기반으로 한 공통 가치관을 대다수가 버림으로 말미암아 절대 진리의 상실과 사회 전반에 걸친 극단적 분열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위의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분열된 단체나 나라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반 법칙입니다. 반면, 연합하는 이들에게 축복이 있는 것도 하나님이 명하신 일반적인 법칙입니다 (시편 133편). 이러한 상황가운데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20).

이제 전 세계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을 어느 정도 진단했으니, 정확한 진단을 했다면 답 또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편에서는 이에 대해 조금 더 심층 분석을 하고 우리가 이에 상응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근원적 변화 ():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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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근원적 변화 (상):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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